머리말
2008년 9월에 처음 대학교수로서 민사소송법을 강의하기 시작했으니 이제 만 15년이 지났다. 거기에 1992년 사법시험을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직후부터 소송실무를 접하면서 민사소송법의 매력에 빠져있다가 본격적인 연구를 위하여 1997년에 박사과정에 입학한 것까지 합하면 민사소송법과 한 세대를 함께 한 셈이다.
그동안 필자는 이런저런 이유로 몇 권의 책을 출간했는데, 그중 2013년에 민사소송법강의라는 교재를 펴낸 적이 있다. 그때는 변호사시험이 처음 시행되는 시점이었으므로 민사소송법의 공부방법이나 변호사시험의 출제경향을 알지 못해 곤란해 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민사소송법의 내용을 요약하고 각 절의 말미에 중요 판례의 판결요지와 출제가능성 있는 문제를 제시하고 그 풀이를 싣는 형식으로 엮었었다.
그런데 이제는 변호사시험이 올해로 12회에 이르렀고 매년 3회의 모의시험을 합치면 기출문제만 하더라도 막대한 양이 되었으므로 출제경향의 파악은 문제될 것이 없고, 오히려 많은 양의 기출문제에 의존하여 공부하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인 상황이 되었다. 이에 맞추어 교과서의 서술형태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여 이 책에서는 먼저 번의 책과는 완전히 다른 체제로 구성하게 되었다. 아래에서 이 책의 특징을 간단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 민사소송법의 제도적 원리를 기초부터 충실하게 다루었다. 제도적 원리에 대한 학습은 법학적인 사고형성의 바탕이 되므로 이 부분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법학의 체계가 잡히지 않는다. 개념 정의에 그치지 않고 간략하게나마 연혁적ㆍ비교법적ㆍ비판적 고찰을 담아 서술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수험생 중에 열심히 공부하였음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든지, 쟁점을 혼동하여 엉뚱한 답안을 작성하거나 백지에 가까운 답안을 제출한 경험이 있다면 원리를 경시한 공부를 해 온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이 책을 넘겨보면 본문 중간 중간에 질문과 이에 대한 풀이가 삽입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본문의 내용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평면적인 문장을 읽어내려 가는 데에서 오는 단조로움을 벗어나게 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주의력을 높일 수 있도록 기획한 것이다. 민사소송법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에서부터 본문을 좀 더 깊이 이해시키기 위한 설명 등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적절히 활용한다면 매우 유용하리라 본다.
셋째, 민사소송법의 이해에 필요한 학설을 충실히 소개하였다. 학설의 대립은 일반적으로 특정 제도에 대한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되므로 민사소송법의 원리를 깊이 이해하는 데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현행 판례의 입장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응용하는 데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학설 대립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학설을 소개함에 있어 필자 개인의 견해를 일일이 밝히지는 않았는데,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여러 학설 중 필자가 선호하는 학설이 어느 것인지는 크게 흥미롭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민사소송법의 전체 체계와 관련되어 있거나 특정 제도의 본질을 이해함에 있어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부득이 필자의 견해를 밝혀두었다.
넷째, 가급적 최신의 정보를 전달하려고 애썼다. 모든 참고문헌은 입수 가능한 최신의 것을 인용하였고, 판례는 2023년 7월에 선고된 것까지 반영하였다. 법령 또한 최신의 것으로 인용하였는데, 민사소송법은 2023. 10. 19. 시행 예정인 법을 기준으로 하였다.
나만의 강의안을 책의 형태로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은 언제나 두려운 일이다. 필자는 수많은 훌륭한 스승과 그분들의 저작으로부터 분에 넘치는 가르침을 받아왔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이 책에 잘못 인용하였을 수도 있고, 판례의 입장을 비판하거나 나름의 의견을 제시함에 있어서 오해에서 비롯된 잘못을 저질렀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출간하는 이유는 필자가 그르친 부분이 있다면 독자들의 비판과 질정을 통하여 이를 바로잡을 기회가 될 수 있고, 기출문제를 풀고 최신 판례의 암기에 매달리는 것이 지루하고 재미없지만 민사소송법을 공부하는 최선의 방법이라 믿고 있는 수험생들에게 지적 호기심이 자극되는 민사소송법 학습의 길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수험생의 입장에서 두꺼운 책은 이해하기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공부해 보면 원리를 깊이 알게 되므로 암기할 내용이 줄어들고,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으므로 이해하기 쉬우니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모쪼록 민사소송법을 쉽고 깊게 그리고 재미있게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끝으로 어려운 출판사정에도 불구하고 본서 출간에 응해주신 법문사 관계자 여러분들께 고마움을 표하며, 특히 필자와 수시로 연락을 취하면서 책의 편집과 출간에 정성을 다한 영업부 정해찬 과장님과 편집부 김용석 차장님의 수고에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