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소개

민사소송과 기판력 - 사례와 판례로 본 기판력의 이해


민사소송법 공부를 함에 있어서 ‘기판력(旣判力)’은 난공불락(難攻不落)의 거대담론이다. 그러나 민사소송법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는 기판력은 숙명적으로 반드시 극복하고 넘어가야 할 산이자 화두(話頭)이다. 기판력론은 민사소송법학의 종착역으로 비견된다.


기판력 이론은 소송물이론을 포함하여 청구원인과 항변, 공격방어방법 등 민사소송법 이론과 실체법상의 권리관계를 둘러싼 민법 등 민사실체법 이론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있어 기판력은 민사법 전반을 유기적으로 아우르는 핵심 키워드이다. 철저한 이해와 학습으로 기판력이라는 산을 넘지 못하면 민사소송법 공부는 미궁(迷宮)에 빠질 수 있다. 민사소송법에는 소송물과 변론주의, 기판력 등 소송절차의 기본개념에 관한 정의규정이 없고 이들을 당연한 전제로 소송절차를 규율하고 있다.


옛날에 법과대학 들어가 형법총론을 공부할 때 ‘금지착오’와 ‘공범과 신분’ 부분은 책을 몇 번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워 혼이 났던 추억이 있다. 그런데 20여년 변호사 업무에 종사하는 동안 형사사건을 많이 다루지는 않았으나 금지착오나 공범과 신분이 관련된 형사사건은 거의 접해보지 못했다. 형법총론의 난해한 학설들을 몰라도 형사실무를 하는 데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민사소송법의 기판력도 마찬가지다. 기판력에 관한 판례를 읽을 때마마 미로(迷路) 속에서 헤매는 것만 같았고, 시험공부를 할 때는 기판력이 중요하다고 난리를 치지만 막상 민사소송실무를 하면서 기판력 때문에 속을 썩이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민사소송제도가 존재하는 한 기판력이라는 민사소송법상의 거대 담론을 피해갈 수는 없다. 실체법과 절차법의 얼개를 씨줄 날줄로 엮어낼 수 있어야 기판력과 기판력의 작용 및 범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로스쿨에서 민사소송법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기판력에 관한 초보적인 이해에 도움이 되도록 두서없이 기판력에 관한 이야기를 가능한 한 쉽게 사례와 판례 중심으로 풀어 보았다. 기판력이라는 렌즈로 전체 민사소송절차를 조감해보는 것도 민사소송법에 친하게 다가가기 위한 초석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책은 저자가 20여 년간의 변호사생활을 중단하고 로스쿨에서에서 시작한 인생 2모작을 마치는 즈음에 펴내는 책이다. 2007년 학교로 들어와 로스쿨 개원준비를 하고 2009년 제1기 로스쿨생을 시작으로 2021년 제12기 로스쿨생들을 상대로 민사소송법과 요건사실론, 민사집행법 등 민사절차법을 가르쳤고, 변호사시험은 2012년 제1회부터 2021년 제10회까지 시행되었다. 사실상 대한민국 로스쿨의 초창기를 경험한 입장에서 감회가 없을 수 없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論語 爲政篇). 생각 없이 배우기만 하는 사람은 어리석게 되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는 사람은 위험에 처하게 된다. 남의 지식을 배우더라도 비판적 사고를 통하여 자신의 지식으로 내면화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고, 배움이 없이 자신의 사고만으로 지식을 체계화하는 사람은 객관성을 잃고 독선과 아집에 빠지기 쉽다.


Papillon asked what crime it was.
He replied, “The crime of a wasted life.”
Papillon wept, “Guilty, guilty.”
The judge pronounced the sentence of death.


영화 ‘빠삐용에서 주인공은 “너는 인생을 낭비한 죄”라는 소리를 듣고 힘없이 고개를 떨군다. 로스쿨생들이 훗날 ’인생을 낭비한 죄‘로 기소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로스쿨 3년이 모든 로스쿨생들에게 일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轉機(turning point)가 되기를 바란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로스쿨에서의 학습도 대면, 비대면 강의가 체계 없이 이루어지면서 혼란을 겪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변호사로서의 기초적인 실무역량을 다질 수 있도록 배전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모두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우리사회의 법치주의의 구현자로서 훌륭한 법조인이 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어려운 출판환경 속에서 저자의 다른 책들과 더불어 이 책을 발간하여 주신 이인규 박사님과 편집부 여러분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21. 7.
제주바다와 한라산 사이에서
오 창 수


목차
Prologue / ⅲ
 
 
제1편 기판력과 기판력의 작용
01. 기판력의 근거와 본질 - 모순금지인가, 반복금지인가? -  3
02. 소송물과 기판력의 관계 - 소송물과 기판력은 일치하는가? -  24
03. 기판력의 범위와 작용 - 기판력을 ‘가지는’ 것과 기판력이 ‘미치는’ 것 -  31
04. 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와 진정명의회복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 - 동일하지는 않지만 ‘실질적으로 동일한’ 것 -  45
05. 오리무중 기판력 - 기판력과 선결관계효 -  57
06. 일부청구와 기판력  67
07. 상계항변과 기판력   75
08. 소송판결과 기판력  90
09. 기판력의 존재와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  96
10. 기판력과 절차적 정의 1 - 부당이득과 불법행위와 관련하여 -  109
11. 기판력과 절차적 정의 2 - 사위판결(詐僞判決)과 불법행위 -  122
12. 확정판결의 편취와 청구이의 – 사위판결의 집행과 구제 : 확정판결의 편취와 부정이용 -  127
13. 부당판결의 확정과 구제방법  136
 
제2편 기판력의 범위
14. 기판력의 객관적 범위와 주관적 범위의 관계  149
15. 변론종결 뒤의 승계인과 기판력의 확장  159
16. 기판력의 주관적 범위와 집행적격의 관계  169
17. 기판력의 시적 한계와 선결적 법률관계  172
18. 기판력과 실권효  176
19. 기판력과 표준시 이후의 형성권 행사  182
20. 정기금판결의 기판력과 사정변경  187
 
제3편 기판력의 특수문제
21. 화해ㆍ조정과 기판력  195
22. 소송계속 중 사망한 자를 당사자로 표시한 판결의 승계인에 대한 기판력  217
23. 반사회적 이중양도와 기판력  237
24. 채권자대위소송과 기판력  252
25. 사해행위취소소송과 기판력  273
26. 배당의의소송 확정판결의 기판력과 부당이득  287
27. 손해배상청구소송 확정판결의 기판력과 사정변경 - 기대여명 단축 및 확장과 관련하여 -  300
28. 취득시효와 기판력  304
29. 한정승인, 상속포기와 기판력  312
30. 기판력과 재심  321
31. 기판력과 확정판결의 증명효  326
 
제4편 특수소송과 기판력
32. 채권집행과 기판력  333
33. 보전처분과 기판력  348
34. 민사소송의 기판력과 형사소송의 기판력  353
35. 가사재판과 기판력  357
 
 
(부록) 기판력 사례연습 / 365